원문 캡처 · transitions.substack.com
원문 캡처 · transitions.substack.com

며칠 전, 프랑크 S. 은좀가는 ‘AI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나보다 더 잘한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자문했다. 그는 1년 넘게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글을 만들어 내는 일이 쉬워질 때 글의 가치가 어떻게 되는지 고민해 왔다.

은좀가의 주장은 글쓰기의 가치가 사람이 직접 문장을 만들었는지에만 달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AI가 만든 글이 넘치는 상황에서 정확성과 정성, 그리고 글이 맡은 역할을 따져야 한다고 본다. 다만 생각을 다듬는 글쓰기와 감정을 전하는 글쓰기에서는 인간의 참여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AI가 음성 대화로 들은 막연한 생각을 더 명료하게 표현하고, 미처 생각지 못한 약점을 짚거나 관련 문헌을 알려 줄 수 있다. 이는 생각을 빠르게 발표할 만한 형태로 다듬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AI가 더 많이 아는 듯 보이고 유창하게 답할수록, 스스로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일을 멈추고 겉으로 탄탄해 보이는 생각에 기대게 될 위험도 있다. 표면은 그럴듯해도 밑바탕까지 튼튼한 생각인지는 별개다.

은좀가에게 글쓰기는 생각을 정교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머릿속의 막연한 생각은 정확하지 않아도 그대로 둘 수 있지만, 말로 옮기면 생각의 모호함과 자기모순이 드러난다. 글을 쓰는 동안 생각을 밖으로 꺼내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빈틈과 어색한 부분, 더 보강할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대화나 토론도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마주하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글쓰기는 생각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어렴풋이 알아도 어떻게 말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 쓰면서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아가기도 한다. 자신이 기꺼이 생각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무엇을 생각한다고 보이게 할지를 정리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글쓰기를 무조건 고결한 행위로 볼 수는 없다. 정직한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이 있고, 글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므로 생각의 바탕이 왜곡되면 결과도 그럴 수 있다. 글을 능숙하게 쓴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깊이나 의도가 선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어떤 글은 AI가 써도 괜찮을까?

은좀가는 글의 역할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고 본다. 기록이나 행정, 실무 이메일처럼 필요한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는 글이라면 AI가 만들거나 다듬어도 괜찮다. 예컨대 어떤 일의 내용과 시점, 방법을 묻는 이메일에 그 세 가지를 정확히 답한다면, 답변이 AI로 작성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형식을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 업무에 쓰는 시간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글을 쉽게 만들수록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고,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할 수 있다. 그러면 오류나 AI가 만들어 낸 부정확한 정보가 퍼질 수 있다. 은좀가는 정확성과 간결성을 지키는 조건으로 실무 이메일에 AI를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두 문장이면 충분한 내용을 두 쪽으로 보내지는 말라는 것이다.

글쓰기의 기원도 이런 구분을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글은 처음에 기록을 위해 만들어졌고, 이후 행정에 널리 쓰였다. 이야기나 개인의 감정·의견을 표현하는 데 쓰인 것은 그보다 나중이었다. 기록과 행정에서는 정확하다면 AI가 작성하거나 편집해도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글에서는 의미가 달라진다. 연인이 보낸 사랑의 편지가 AI가 쓴 것임을 알게 된다면, 문법이 완벽한지가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을 직접 표현한 말인지가 중요해진다. 보낸 사람이 직접 고른 말과 다듬은 문장이 아니라면 편지의 목적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은좀가는 과거에도 대필 작가나 보조자가 쓴 글을 유명 작가가 자기 이름으로 내놓은 일이 있었다고 짚는다. 이를 AI 사용 사실을 밝히지 않는 일과 같은 종류의 속임수로 봐야 하는지는 질문으로 남긴다. 한편 그는 AI 글을 무조건 거부하는 반응에도 공감한다. 부주의하게 대량 생산한 형편없는 글이 넘치는 상황이 그 배경이다. 그러나 AI가 다듬었더라도 글이 작성자의 의도를 충실히 전하고 필요를 정확히 채운다면, AI 사용 자체만으로 거부할 이유가 있는지는 따져 볼 문제라고 본다.

사람의 글쓰기와 AI의 글쓰기는 어떻게 다른가?

은좀가는 AI가 만든 글에 대한 거부감이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지만, AI가 쓴 부실한 이메일을 걸러내거나 다루는 방법도 필요해질 수 있다고 본다. 소셜미디어에서 AI 영상이 관심을 얻는 것처럼 AI가 만들거나 AI의 도움을 받은 시와 단편, 소설도 독자를 찾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 성패는 콘텐츠의 유통과 품질에 달려 있다고 본다. AI 도움을 받은 소설을 독자가 외면하고, 대신 서투르게 쓰인 인간의 소설을 택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앞으로 벌어질 일을 놀라워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은좀가는 교황의 견해에 동의해, 완전히 AI가 만든 결과물은 인간이 만든 창작물과 존재론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하지만 품질이 높은 합성 글 가운데는 인간의 상당한 입력과 지시, 편집 없이 만들어진 것이 거의 없다고 덧붙인다. 그러므로 차이는 순수하게 인간이 만든 글과 인간-AI 협업의 결과물 사이에 놓인다고 본다. 느슨한 지시 하나로 AI가 만든 결과와, 사람이 AI와 여러 차례 주고받으며 만든 결과도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는 사진이 회화를 없애지 않았고 3D 프린터가 조각을 없애지 않았으며, 음악 합성 도구가 클래식 음악을 없애지 않은 것처럼 AI도 새로운 창작 방식과 장르를 낳을 수 있다고 본다. 동굴 벽화에서 글과 조각으로 이어진 표현의 역사에 새로운 도구가 더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창작이 계속되기를 바라면서도 기술 변화가 그 창작의 형태를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인간과 AI가 함께 만든 결과물이 순수하게 인간이 만든 작품과 다르다는 사실이, 그것이 인간 표현의 일부가 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은좀가는 처음 에세이를 시작할 때 막연했던 생각이 며칠 동안 쓰고 멈추고 다시 읽으며 달라졌다고 돌아본다. 글쓰기를 거치면서 생각을 발견했거나, 그 시간 동안 생각을 계속 이어 왔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표현을 전통적인 형태와 새로운 형태 모두에서 계속 원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이 사라지는 경쟁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가 제시하는 구분은 인간이 썼는지 AI가 도왔는지가 아니라, 글을 만드는 데 얼마나 노력과 주의를 기울였는지다. AI가 만든 부실한 글도 있고, 사람이 직접 쓴 부실한 글도 있다. 부정확함과 환각, 거짓말, 모호함, 편향을 숨기는 태도는 글을 누가 만들었는지와 별개로 문제다. 반대로 사람이 공들여 쓴 초안을 AI로 다듬은 글은 유용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 AI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는 사람의 문장을 더 명료하고 아름답게 다듬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은좀가는 본다.

그가 마지막에 남기는 기준은 글이 맡은 일을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해내는지, 그리고 거기에 충분한 노력이 들어갔는지다. 다만 AI 사용을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나, 대량의 부실한 글을 걸러낼 방법은 제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