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공개된 미 해군·국가안보국(NSA) 보고서는 2001년 남중국해에서 중국 전투기와 충돌한 미군 정찰기 EP-3E의 기밀 자료가 중국에 노출된 경위와 범위를 밝혔다. 정보 손실은 치명적 수준은 아니었지만, 승무원들이 파괴하지 못한 자료와 장비에는 중국의 통신·레이더 정보, 미군의 신호정보 수집 방법, 암호 관련 자료가 포함됐다.
보고서는 충돌 3개월 뒤 작성됐으며, 에드워드 스노든이 2013년 확보한 문서에 포함돼 있었다. 조사단은 승무원들이 장비와 자료를 파괴하려 한 방식에 문제를 지적했지만, 적절한 도구와 훈련, 표준 절차를 제공하지 않은 군에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완전한 기밀 자료 목록이 없어 피해 평가는 불가피하게 불완전하다고 덧붙였다.
충돌 뒤 급박했던 기체 파괴 시도
2001년 4월 1일, 오키나와에서 출발한 EP-3E는 중국 통신과 레이더·무기체계 신호를 감시하고 있었다. 하이난섬 남동쪽 약 70마일 지점에서 중국의 F-8 전투기가 정찰기에 접근하다 충돌했다. 중국 조종사 왕웨이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고, 파손된 정찰기는 중국 하이난섬의 링수이 공군기지에 비상 착륙했다. 승무원 24명은 중국이 석방을 거부한 뒤 11일 만에 풀려났다.
조종사 셰인 오스본 중위는 기체를 바다에 버리는 대신 착륙시키기로 했다. 충돌로 계기와 플랩이 손상됐고 기체는 연료 때문에 정상 착륙 중량보다 3만 파운드 무거웠다는 설명이다. 승무원들은 착륙 전 약 20분 동안 기밀 자료를 파괴해야 했지만,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파괴해야 하는지 제대로 훈련받지 못했다. 보고서는 충돌 후 착륙까지 약 40분이 있었음에도 컴퓨터와 전자 매체, 종이 자료를 신속히 파괴할 수단이나 표준 절차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승무원들은 문서를 손으로 찢고, 녹음테이프를 잡아당겨 끊었으며, 노트북을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밟고 책상에 내리쳤다. 비상용 도끼는 장비를 부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일부 암호 키와 코드북, 노트북은 비상 탈출구로 내보냈지만, 암호 키 16개와 다른 코드북·노트북, 신호정보 처리용 대형 컴퓨터는 기내에 남았다. 신호 수집 장비 중 화면과 조작부는 파괴했지만 핵심 부품인 튜너와 신호 처리기는 남았다. 암호화 통신 장비 일부는 파괴되지 않았으나 메모리는 초기화했다.
조사단은 승무원들이 기밀 자료 목록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파괴 대상과 노출 가능 자료를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봤다. 일부 자료는 임무에 불필요했는데도 기내에 실려 있었다. 예컨대 군 통신에 쓰는 최상급 비밀 암호 키가 거의 한 달 치 탑재돼 있었다. 일일 키는 사고 후 15시간 안에 폐기·교체했지만, GPS 데이터 인증에 쓰인 전 세계 공용 키는 이용자 25만 명에게 통지해야 해 교체에 거의 2주가 걸렸다.
노출된 정보와 평가
보고서가 파악한 노출 자료에는 미군과 외국 협력기관 정보요원의 이름, 주소, 사회보장번호와 직무 설명이 포함됐다. 또 미국이 신호를 수집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지침, 중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수집 대상과 주파수·호출부호, 동맹국 무기체계의 신호 특성과 세계 각지 레이더 기지 정보도 있었다. 특히 중국의 통신 수집을 위한 임무 지시와 중국 해군 통신의 암호문·복호문이 함께 담긴 45분 분량의 테이프가 민감한 자료로 꼽혔다.
기내 컴퓨터에는 통신정보와 외국 계측 신호, 전자정보를 수집·분석·처리하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가 들어 있었다. 이 가운데 한 시스템은 지휘통제센터와 레이더·무기체계·전투기 간 통신인 PROFORMA를 처리했다. 조사단은 중국이 이를 이용해 미국의 감시를 방해하도록 통신 방식을 바꾸거나, 다른 나라의 통신을 수집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중국 잠수함 관련 신호를 찾아 특정 함정과 연결하는 능력, 중국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관한 정보도 노출됐다.
조사단은 정보 손실의 심각도를 중간에서 낮은 수준으로 평가했고, 노출 자료가 중국에 미국의 암호 체계를 더 잘 공격할 능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다만 중국이 미국의 통신 보안 방식을 연구하거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암호화·전송 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 작성 당시에는 중국 통신 방식의 변화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후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전직 신호정보 장교 제이슨 힐리는 암호문과 복호문이 함께 노출되면 중국이 미국의 복호화 처리 방식을 추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안보기록보관소 선임연구원 제프리 리첼슨은 보고서가 사건의 역사적 기록을 보완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NSA는 보고서와 정보 손실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미군은 사건 뒤 정찰기의 자료·장비 보호와 승무원 훈련을 개선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미국과 중국은 2014년 항공·해상 조우의 안전을 다루는 양해각서를 채택했지만, 이후에도 중국 전투기와 EP-3E의 근접 조우가 발생했다. 해당 합의가 향후 충돌을 막을지는 불분명하다고 기사는 전했다.
원문에 포함된 자료와 링크
- 2016년 중국의 수중 드론 압류 관련 보도: 뉴욕타임스 기사
- 당시 공개된 편집본 보고서 관련 보도: CBS News 기사
- 오스본에 대한 비판 관련 보도: Omaha World-Herald 기사
- 제프리 리첼슨의 저서: 미국 정보기관 관련 책
- 중국의 정찰 비행 대응에 관한 자료: Jamestown Foundation 분석
- NSA 통신보안부대 미사와 관련 자료: NSGA Misawa
- 2008년 정보 노출 의혹을 다룬 기사: The New Yorker 기사
- 2016년 EP-3E 근접 조우 보도: CNN 기사
- 러시아 항공기의 근접 비행 관련 보도: CNN 기사
- 기사에 실린 사진과 지도: 왕웨이 근접 비행 사진, EP-3E 비행 경로도, 왕웨이 사진, 승무원 사진, 암호 장비 사진, 파손된 노트북 사진, 기체 회수 사진
- 기사 작성자 Kim Zetter의 프로필, 이메일, X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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