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경험은 결정을 빚고, 결정은 다시 경험에 영향을 준다. AI가 우리 대신 경험할 수는 없다. 무언가를 배울 때는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 어떤 일은 직접 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며, 그 경험은 우리의 생각을 물들이고 형성한다. 그런 일을 우리 대신 AI가 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개의치 않기로 할 수 있다. 배움에는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지 경계를 정하는 일이 따른다. 모든 것을 빠짐없이 설명하는 교육 과정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 생활에서 우리는 많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단순하고 고된 작업도 위임한다.
반대로 중요하게 여길 수도 있다. 지름길을 택한다면 그 여정을 포기한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 경험을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예전에 든 비유 중 하나는 과학이 하이킹과 조금 비슷하다는 것이다. 흥미롭고 아름다운 폭포가 어딘가에 있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폭포를 찾아 하이킹을 가기로 한다. 그러려면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길을 조금 헤매기도 하지만, 헤매는 동안 다른 흥미로운 것을 발견해 기록할 수도 있다. 폭포로 가는 길에 저 멀리 더 장관인 폭포를 발견할 수도 있다. 아직은 그곳에 갈 수 없지만, 미래의 누군가는 거기까지 가는 방법을 알아낼지도 모른다. 목표에 이르는 과정 전체에도 큰 가치가 있다. 하지만 AI 도구는 헬리콥터처럼 우리를 폭포까지 곧장 데려다주고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폭포를 보기는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방법은 배우지 못한다. 요청한 바로 그 대상 말고는 다른 흥미로운 현상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목표를 훨씬 효율적으로 달성하더라도 잃는 것이 있을 수 있다.”
— 테런스 타오(Terence Tao), ‘AI와 과학의 중심에 놓인 역설’에서
한편 AI는 점점 더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고 있다. 지능이 더 이상 병목이 아니라면, 무엇이 병목이 될까?
기술 덕분에 나뭇가지와 통나무로 불을 피우는 대신 인덕션의 버튼을 눌러 요리할 수 있게 됐지만, 요리사는 여전히 열이 재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왜 특정 조리법을 쓰려는지 알아야 했다. 계산기를 써서 계산할 수 있게 됐을 때도 어떤 공식을 적용해야 하는지, 수학 이론이나 개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언제 사용해야 하는지, 왜 그 공식을 골랐는지 알아야 했다.
이 기술이 점점 더 유능한 지능이 되면, 우리는 덜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AI가 결정하고 처리하도록 맡길 것이다. 무엇이 중요한지는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무엇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지 계속 물어야 한다. 전문 지식과 개인적인 목적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아는 데 핵심이다.
기술을 활용해 일을 더 쉽게 할 때, 우리는 각자의 방향과 동기를 가져온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바쁘기만 한 일을 하고 품질 낮은 결과물을 얻는다.
결국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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