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망과 데이터센터 사이에서 전압을 바꾸고 전력 흐름을 제어하는 반도체 변압기(SST)가 주목받고 있다. 다만 기존 변압기보다 작고 유연한 이 장치가 수십 년간 작동해 온 기존 장비를 대체할 만큼 안정적이고 경제적인지는 아직 검증이 필요하다.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연구진은 매사추세츠주 레녹스의 연구용 변전소에서 전력망에 연결된 메가와트급 SST를 시험했다. 연구진이 아는 한, 실제 전력망에서 메가와트급 SST를 시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장치는 전력망의 전기를 전기차 충전소로 보내 차량에 공급했다.
기존 변압기는 자성 강철 코어에 감은 코일을 이용해 전압을 높이거나 낮춘다. 구조가 지난 한 세기 동안 크게 바뀌지 않았고, 효율이 거의 99%에 이르며 수십 년간 작동한다. 반면 고전압 변압기는 수요와 재료 제약으로 납기가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 미국 규정의 기존 변압기 효율 기준
SST는 자성 코어를 작게 만들고 전력 반도체를 결합한다. 실리콘보다 높은 전압을 다룰 수 있는 탄화규소 반도체를 고속으로 스위칭해 전력을 변환하고, 기존 변압기처럼 전기적 절연을 유지한다. 부하에 맞춰 교류나 직류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으며, 전압을 안정시키거나 배터리의 전력을 전력망으로 되돌리는 방식으로 전력 흐름을 제어할 수도 있다. 교류에서 직류로 변환하는 단계를 줄이면 장비 크기를 줄이고 손실을 몇 퍼센트포인트 낮출 수 있다.
이 장치가 당장 기존 대형 변압기를 대체하거나 변압기 부족을 해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DG Matrix의 최고경영자 겸 공동창업자 하룬 이남(Haroon Inam)은 SST가 송전선 끝이나 배전망 가장자리처럼 전력 수요가 집중되는 곳에서 여러 장비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회사는 전기차 충전용으로 시작한 기술이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에도 쓰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엔비디아는 서버 랙 한 대에 1메가와트의 전력을 공급하는 계획을 세웠다. 데이터센터에서 쓰는 기존 교류 배전 방식으로는 필요한 전류를 감당하려면 구리 케이블이 지나치게 굵어지고 열도 늘어난다는 것이 이남의 설명이다. 이에 엔비디아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는 건물 안에서 교류 대신 직류를 배전하고, 전력망의 중전압 교류를 800볼트 직류로 바꾸는 설계안을 제안했다. 이 전압은 전기차 급속 충전 공급망에서 쓰이던 값을 따랐다. 해당 사양은 SST 사용을 의무화하지 않지만, 엔비디아에 따르면 제조사와 인프라 제공업체 80곳 이상이 이를 충족하는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Open Compute Project의 설계 사양 관련 발표
DG Matrix는 전력망에 직접 연결하는 중전압 장비를 개발하는 한편, 전력회사 변압기 뒤편에 설치하는 소형 SST를 판매한다. 회사 측은 이 장비가 정류기, 인버터, 예비 전력 장치, 에너지 관리 장비 등을 하나의 장치로 통합한다고 설명한다. 실험실과 현장에서 누적 10만 시간 넘게 비연속 운전했고, 여러 장소에 Flex 장치 10대를 설치했다고 이남은 밝혔다.
SST에 배터리와 제어 소프트웨어를 결합하면 데이터센터가 전력망의 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미국 국립로키산맥연구소의 전력망 통합 프로그램 책임자 무랄리 바구(Murali Baggu)는 기술적 과제와 표준 정비가 남아 있다고 전제하면서, 이런 장치가 데이터센터를 전력망 안정에 기여하는 주체로 바꿀 수 있다고 봤다.
전력 수요가 갑자기 바뀌는 상황은 실제 전력망에 부담을 준다. 버지니아주 애시번의 송전선 고장으로 데이터센터들이 예비 전력으로 전환한 7월 22일에는 PJM 전력망에서 약 3,800메가와트의 부하가 빠져나갔고, 전압이 급등해 시카고까지 조명이 깜박였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블로그 게시물에서 AI 학습 작업의 동시 실행으로 전력 수요가 몇 초 만에 수백 메가와트씩 출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듀크대의 2025년 연구는 데이터센터 같은 대규모 부하의 연간 전력 사용량을 0.5%만 줄여도 새 발전 설비 없이 약 100기가와트의 신규 부하를 수용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일부 운영사는 완벽한 전력 공급을 보장받지 않는 대신 전력망 연결 시기를 앞당기는 ‘비확정 접속’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SST의 상용화에는 추가 시험이 필요하다. 고장 전류가 부품을 손상시키거나 위험한 아크를 일으킬 수 있어 새로운 보호 장치와 반도체 회로 차단기가 필요하다. 중전압 전력망과 하위 설비를 분리하는 절연체도 수십만 번의 열 순환을 견뎌야 한다. 반도체는 철과 다른 방식으로 고장 날 수 있고, 스위칭 부품이 많은 장치는 고장 가능성도 늘어난다. 업계 시험과 시범사업의 결과가 대부분 공개되지 않아 기술의 실제 상태와 문제를 공동체가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데이터센터 건설 붐은 SST 개발과 투자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이 기술이 기존 변압기만큼 신뢰성을 입증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연구진은 전력망에서 장비를 더 유연하게 제어할 가능성을 살피는 한편, 고장 대응과 인증, 공개된 현장 검증을 과제로 남겨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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