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AI는 학생의 과제를 대신하고 대학의 채점에도 쓰이지만, 대학의 위기는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진행돼 왔다. 이 글은 호주 대학의 과도한 업무량과 시장 중심 개혁이 학습과 연구를 수치화했고, 그 구조가 AI의 확산을 부추기며 기존 문제를 더 키운다고 주장한다.
AI는 인간이 만든 콘텐츠를 학습한다. 다른 AI의 결과물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모델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모델 붕괴 안내). 호주의 고서점들이 오래된 책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구매자를 목격했다는 보도도 나왔다(가디언 보도). AI 기업이나 대리인이 구매한 것으로 추정된 책에는 토양 역학 안내서와 멜버른 교외의 역사서, 초기 호주 시집 등이 포함됐다. 데이터 확보 비용이 커지면서 책을 훼손해 스캔하는 방식이 매력적인 선택지가 됐다는 설명이다.
대학에서는 반대편의 결과를 본다. 학생이 쓴 것처럼 보이지만 문법 오류가 거의 없는 과제를 읽으며, 실제로는 학생이 질문을 AI에 입력했을 뿐일 수 있다고 의심한다. 과거의 저작물을 학습한 모델이 과제를 조합해 제출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쓴이에게 피드백을 주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회의가 생긴다.
과제 부정행위보다 큰 문제
호주 대학생 가운데 과제에 AI를 쓰는 비율은 명확하지 않다. 2024년 8,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40%가 AI를 이용한 부정행위를 인정했지만(조사 결과), 2025년 RMIT 산하 연구센터 조사에서는 학생의 약 80%가 AI를 사용했다고 답했다. 다만 이 조사는 사용 목적을 특정하지 않았다(조사 보고서). 미국 대학생 조사에서는 3분의 2가 AI를 썼고(UC Berkeley 연구), 영국 학생 사이에서도 사용이 “거의 보편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영국 조사). 이 수치가 모두 과제 부정행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문제의 원인을 학생의 부정행위나 평가 방식에만 돌려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학생과 교직원의 AI 의존은 대학을 시장 경쟁과 관리 중심으로 바꾼 수십 년간의 개혁과 맞물려 있다는 주장이다. 학생과 교직원이 모두 평가를 AI에 맡긴다면, 대학은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을 넘어 배움과 판단을 나누는 공간이라는 역할을 잃을 수 있다.
호주 학자 카일리 무어-길버트(Kylie Moore-Gilbert)는 호주 대학들이 “산업 규모의 사기”를 저지른다고 비판했다(기고문). 이에 웨스턴 시드니 대학교의 캐스 엘리스(Cath Ellis) 부총장은 대학이 AI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엘리스의 글이 AI에 크게 의존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 두 신문은 해당 글을 삭제했다(ABC 보도). 이 글은 이런 사례가 대학의 문제를 학생 탓으로만 돌릴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대학의 성과를 숫자로 바꾼 구조
글은 호주 대학의 시장 중심 개혁이 본격화된 시점을 1980년대로 짚는다. 존 도킨스(John Dawkins) 교육부 장관 시절 정부 지원금 비중은 1980년대 약 80%에서 약 40%로 낮아졌고, 대학 등록자는 크게 늘었다(대학 재정 변화에 관한 설명). 대학은 국내 학생의 등록금과 해외 학생 유치로 재정을 보충했다. 개혁은 대학 간 경쟁과 경영진의 통제를 강화하고, 학계의 자율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연구도 인용된다(연구).
그 결과 대학 업무는 성과 지표와 관리 체계로 측정됐다. 2024년 호주 대학 노동력의 60%는 학기마다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병가나 연차 같은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정 고용 상태였다는 연구가 있다(연구). 전국고등교육노조 조사에서는 정규직 응답자의 88%가 2019년 이후 인정받지 못하는 업무량이 늘었다고 답했다(조사 보고서).
철학자 마크 피셔(Mark Fisher)는 측정하기 어려운 노동을 평가하려면 관리와 관료주의가 더해지고, 결국 실제 업무보다 그 성과를 보여주는 자료를 만드는 데 힘이 쏠린다고 설명했다(《자본주의 리얼리즘》). 대학에서는 논문 수와 인용 지표가 연구의 대리 척도가 됐다. 학술지와 대학의 성과 지표가 지식 자체보다 숫자를 우선시하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학술 출판 시장 분석).
이런 구조는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기존 성과 체계에 끼워 넣기 쉽게 한다. 시카고 대학교 통계학자 니컬러스 폴슨(Nicholas Polson)은 1년 동안 200편이 넘는 논문과 14권의 책에 저자 또는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고, AI가 그 작업을 도왔다고 인정했다(워싱턴포스트 보도). 학술지 Organization Science 편집진은 ChatGPT가 등장한 2022년 말 이후 투고 논문이 42% 늘었다고 밝혔다(편집진 분석). 이 글은 문제를 AI 하나의 영향으로 보지 않고, 더 나은 연구보다 더 많은 연구를 요구하는 제도적 보상과 결합한 결과로 해석한다.
등록금과 ‘대량 처리’ 교육
호주에서 2027년 법학·회계학·경영학 등 여러 전공을 공부하는 국내 학생은 연간 1만8,000호주달러가 넘는 등록금을 내고, 3년제 학위의 빚은 5만4,000호주달러를 넘을 수 있다(등록금 안내). 해외 학생은 더 많은 비용을 낸다. 시드니 대학교는 수입의 47%를 해외 학생에게서 얻고(관련 자료), 멜버른 대학교의 해외 학생은 2027년 문학사 과정에 최대 18만7,000호주달러를 낼 수 있다(등록금표).
이 글은 높은 등록금과 대학의 성장 압력이 교육을 정해진 비용에 정해진 결과를 제공하는 거래로 바꾼다고 본다. 더 많은 학생을 유치해야 하는 대학은 입학 장벽과 지원 비용을 낮추고, 강의는 온라인·녹화 자료로 대체되며, 학생은 학습보다 학위를 얻는 데 집중할 수 있다. 호주 대학 직원들은 표절이나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수백 명을 통과시키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전해졌다(가디언 보도).
교직원의 과중한 업무도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제시된다. 한 연구는 고등교육 종사자의 연간 조정 업무량이 평균 3,256시간이라고 보고했다(연구). 전국고등교육노조 조사 응답자들은 강의와 실습의 규모, 학생 수가 늘었다고 답했다. 이 글의 주장은 AI가 대학의 문제를 처음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학습을 약화시킨 구조에 값싼 과제 작성과 채점 수단을 더해 상황을 빠르게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대학을 둘러싼 불만과 AI의 역할
대학 구성원의 불만은 AI에만 향하지 않는다. 2024년 호주 공립대 38곳 부총장의 평균 보수는 102만 호주달러였고, 전국고등교육노조 조사에서는 주 총리보다 많은 급여를 받는 대학 임원이 300명으로 집계됐다(보수 관련 보도). 노조는 대학의 미지급 임금이 전체 4억5,000만 호주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했다(노조 자료).
글은 AI를 대학이 오랫동안 안고 있던 모순을 드러내는 촉매로 본다. 2026년 9월 시드니 대학교 직원들은 파업에 나섰고, 요구 사항에는 AI 문제도 포함됐다(파업 보도). 그러나 파업이 끝난 지 2주도 되지 않아 대학 경영진은 오픈AI와 다년간 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은 학습 전반에 AI 에이전트를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협약 보도).
이 글의 결론은 대학의 AI 문제를 기술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학이 효율성과 측정 가능한 성과를 우선하는 구조를 유지한다면, AI는 그 방향을 더 밀어붙일 수 있다. 대학의 위기는 AI가 망가뜨린 제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판단과 배움을 숫자와 생산량으로 바꿔온 사회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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