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파인먼은 1959년 12월 29일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ch)에서 열린 미국물리학회 연례회의에서 원자 하나씩을 직접 조작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그는 이 강연에서 초소형 기계와 고밀도 정보 저장의 가능성을 논했으며,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80년대 이후 나노기술의 초기 구상을 설명하는 자료로 다시 주목받았다.
원자 규모의 조작과 정보 저장
파인먼은 세계의 책에 담긴 정보를 한 변이 약 0.13mm인 정육면체에 넣을 수 있다고 추산하며, 정보를 3차원으로 기록하는 가능성을 제안했다. 원자 규모에서는 양자역학이 중요해지므로 에너지 준위와 스핀을 활용할 수 있다고 봤다. 더 조밀한 컴퓨터 회로와 당시 전자현미경보다 작은 물체를 볼 수 있는 현미경도 구상했다. 이후 주사 터널링 현미경과 원자힘 현미경 등 주사 탐침 현미경 기술, IBM Millipede 같은 저장 시스템이 등장했다.
그는 원자를 원하는 방식으로 배열해 기계적으로 화학물질을 합성하는 나노 규모 기계도 원리상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사람의 손으로 조작하는 축소형 도구를 만들고, 그 도구로 더 작은 도구를 만드는 사고실험도 소개했다. 한편 친구이자 대학원생인 앨버트 힙스의 아이디어로, 삼킬 수 있는 작은 수술 로봇도 언급했다.
크기가 작아질수록 중력의 영향은 줄고 반데르발스 힘의 중요성은 커지므로 도구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물학적 효소와 리보솜은 물질을 만들고 정보를 저장하는 작은 구조의 사례로 제시됐다.
두 가지 상금 과제
강연 말미에 파인먼은 각각 1,000달러의 상금을 내건 과제를 제시했다. 첫 과제는 한 변이 1/64인치(약 0.4mm)인 정육면체 안에 전선을 제외한 작은 모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 대학원생 윌리엄 맥렐런이 1960년 11월 전통적인 도구를 사용해 이를 완성했다. 다만 이 모터가 나노기술 분야의 진전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과제는 책의 한 페이지를 선형 크기 1/25,000으로 줄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체를 핀 머리에 넣을 수 있을 만큼 글자를 작게 쓰는 것이었다. 스탠퍼드 대학원생 톰 뉴먼은 1985년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첫 문단을 같은 비율로 축소해 과제를 해결했다.
뒤늦은 영향과 원자 메모리
강연은 1960년 2월 Caltech의 Engineering and Science에 실렸고, 이듬해 《Miniaturization》의 마지막 장에도 수록됐다. 하지만 과학 문헌에서 이 강연의 인용은 발표 뒤 20년 동안 미미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 문화인류학자 크리스 투미의 분석에 따르면, 관심은 ‘나노기술’이라는 용어가 주목받기 시작한 1990년대 초 크게 늘었다. 투미는 2008년 논문에서 강연이 초기 나노기술 연구자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 어렵고, 이들 중 상당수가 나중에야 강연을 읽었다고 전했다.
2016년 TU Delft와 국제 이베리아 나노기술연구소(INL) 연구진은 염소 원자와 빈자리를 이용해 강연 일부를 저장했다. 주사 터널링 현미경으로 원자 수천 개를 조작해 문장을 기록했으며, 저장 용량은 1,016바이트(8,128비트), 밀도는 제곱인치당 502테라비트였다. 연구 결과는 Nature Nanotechnology 논문에 발표됐다.
강연 원문은 Caltech Engineering and Science의 1960년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노기술과 강연의 역사적 관계를 다룬 크리스 투미의 논문도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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