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는 종이 전화번호부의 비용과 규모를 줄이려고 가정에 미니텔(Minitel) 단말기를 무료로 빌려줬다. 전화번호 검색용으로 시작한 네트워크는 뉴스·예약·메시지 서비스로 확장됐고, 각 서비스 안에서 이메일과 비슷한 소통 방식이 잇따라 생겨났다.
종이 전화번호부에서 가정용 단말기로
전화번호부는 전화 연결을 맡은 교환원이 쓸 이름 50개를 적은 판에서 시작해, 1975년 파리에서는 알파벳 A부터 I까지 수록한 책만 1,480쪽에 이르렀다. 1981년 프랑스의 모든 전화번호를 담으려면 총 95권에 무게 110kg이 필요했다. 해마다 전화번호부 1,600만 부를 인쇄해 배포해야 했다.
1979년 추산에 따르면 전화번호부는 프랑스 전화회사에 1억2,000만 프랑(당시 약 2,800만 달러)의 손실을 안겼고, 해마다 종이 2만 미터톤을 썼다. 1985년까지 규모가 다섯 배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프랑스 우정·전신·전화기관인 PTT는 종이 대신 반도체 기반 단말기로 전화번호를 검색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목표는 당시 가정용 컴퓨터보다 훨씬 저렴한 단말기였다. 애플 ][는 약 1,300달러, 코모도어 PET는 795달러였지만 PTT는 기기 한 대에 50달러만 쓰기를 원했다. 단말기는 화면과 키보드로 원격 서버에 접속하는 방식이었다. 프로그램과 데이터는 서버에 두고, 이용자는 전화선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았다. 이런 구조는 공유 데이터베이스와 공개 파일을 제공하고 이용자끼리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다.
프랑스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Valery Giscard d’Estaing)을 위해 작성된 1978년 보고서 《사회의 전산화》는 미래를 “기기는 컴퓨터이고, 개념은 정보”라고 설명했다. 전화번호 검색뿐 아니라 뉴스 읽기, 날씨 확인, 항공권 예약도 구상했다.
대중 보급을 위한 단말기 가격은 결국 기기당 140달러까지 올랐다. 그래도 수익이 예상보다 높아 투자 회수 기간은 당초 5년에서 4년으로 단축됐다. PTT는 기기를 가정에 무료로 빌려줬지만, 사용자는 분당 1프랑(당시 약 0.30달러, 현재 가치로 약 0.50달러)을 냈다. 이용료는 전화요금에 더해졌다.
미니텔은 별도 컴퓨터나 전문 지식 없이 단말기를 전화선에 연결하고 지역 접속 번호로 전화를 걸면 쓸 수 있었다. 전화번호부 서비스 Annuaire Électronique는 3611로 무료 접속할 수 있었고, 3615 SNCF처럼 번호와 이름을 입력하는 다른 서비스는 분당 요금이 붙었다. 프랑스 전역에서 쉽게 단말기를 구할 수 있었던 덕분에 보급 초기부터 이용자와 서비스가 함께 늘었다. 컴퓨터 역사 박물관에 따르면 출시 2년 뒤인 1984년에는 시민 600만 명이 뉴스 읽기, 이메일 보내기, 기차표 구매, 세금 납부, 대화에 미니텔을 이용했다. 약 10년 뒤에는 단말기 약 900만 대와 이용자 2,500만 명이 2만3,000개가 넘는 서비스에 접속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각 서비스에서 자라난 메시지
미니텔은 전화번호 검색만을 위한 폐쇄형 시스템이 아니었다. 개인용 컴퓨터나 서버를 가진 사업자는 X.25 네트워크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텔레콤에 단축 번호를 등록할 수 있었다. 프랑스 텔레콤은 수익의 60% 이상을 서비스 제공자와 나눴다. 이용자가 서비스를 오래 쓸수록 제공자 수익도 늘었고, 결제 시스템을 따로 만들 필요도 없었다.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원한 것 가운데 하나는 대화였다. 초기 시험 서비스 M3V에는 이용자끼리 전자우편을 주고받는 기능이 있었고, 시험 기간이 끝난 뒤에도 이용자들이 서비스를 유지해달라고 요청했다. 신문사 Les Dernieres Nouvelles d'Alsace가 만든 Gretel도 독자들이 연락할 수 있도록 세 줄짜리 메시지 교환 기능을 넣었다. 개발자 미셸 랑다레(Michel Landaret)는 당시 이용자들이 기능을 찾아내고 쓰기 시작하자 “수문이 열렸다”고 회고했다.
공식 3615 TELNET, 더 저렴한 3612 MINICOM, M3V와 Gretel, 전용 메시지 서비스 GEN4와 RTEL 등에서 서로 다른 메시지 기능이 생겼다. 이용자는 보통 익명 이름을 정해 같은 서비스의 다른 이용자에게 비공개 메시지를 보냈다. M3V는 여러 구독자에게 같은 메시지를 빠르게 보내는 기능을 제공했다. TELNET은 SMS를 보낼 수 있었고, RTEL과 공식 MINICOM은 1997년 실제 인터넷 이메일로 연결되는 통로도 제공했다.
다만 메시지는 각 서비스 안에 갇혀 있었다. 중앙 받은편지함이 없었고, 미니텔 단말기에 오프라인 메시지 목록도 저장되지 않았다. 새 메시지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해당 서비스를 다시 접속해야 했다. 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낸 뒤 다른 서비스에서 직장 동료와 연락하고, 또 다른 서비스에서 새 친구나 관심 모임을 찾는 식이었다. 르몽드와 인터뷰한 미니텔 이용자 히치콕(Hitchcock)은 거의 모든 서비스를 써본 뒤 두세 곳을 정기적으로 이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메시지 서비스는 실시간 채팅으로 발전했다. 《미니텔 사가》에 따르면 최장 대화는 72시간 이어졌고, 한 이용자는 한 달에 200시간 접속했다. Gretel은 1988년 대중용 미니텔 통신량의 40%를 차지했다. 친구와 가족, 기업이 소통하는 한편 성인 채팅 서비스인 ‘핑크’ 서비스도 큰 수익을 냈다. LA타임스는 1989년 이 서비스의 월수입이 약 40만 달러에 이르렀고 프랑스 텔레콤 미니텔 이익의 절반까지 차지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성공과 그늘
성인 채팅을 둘러싸고 검열과 통신사업자의 책임 문제가 제기됐다. 미니텔 법률 고문 클레르 미알라레(Claire Mialaret)는 사업자가 통신망 제공자로 여겨지길 원하며 검열자로 취급되거나 공공서비스가 도덕을 정하는 위치에 서길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Gretel을 만든 랑다레는 익명성이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약하게 만들고, 충분한 검토 없이 너무 빠르게 확산된 현상이 피해를 낳는다고 우려했다. 그는 Gretel과 유사 서비스가 이혼 약 50건과 자살 여섯 건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미니텔은 농민들이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당국에 가축 폐사를 알리고 실험실에 우유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데 쓰이는 등 실용적인 역할도 했다. 프랑스 가정의 절반가량이 이용한 네트워크는 인터넷이 구식으로 만들고도 2012년까지 운영됐다. Gretel은 1986년 텔레콤 수익 배분만으로 연간 1,300만 프랑의 매출과 세금·충당금 차감 전 27%의 이익을 올렸다.
프랑스 엔지니어이자 미니텔 사업을 이끈 제라르 테리(Gérard Théry)는 네트워크가 성장하던 시기에 철도나 비행기의 등장에 견줄 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니텔은 프랑스의 전화번호부를 디지털화하는 데서 출발해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머물고 소통하는 공간이 됐다. 그러나 다른 나라로 널리 확산되지는 못했다. 미니텔 메시지와 인터넷 이메일을 잇는 통로가 생길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인터넷과 닷컴 붐이 빠르게 커지며 미니텔은 고립됐다.
프랑스는 종이 전화번호부를 대체하려고 단말기를 보급했지만, 이용자들은 그 안에서 여러 메시지 서비스를 만들고 대화 공간을 키웠다. 미니텔은 인터넷 이전에 대규모 온라인 소통과 서비스 사업 모델을 실현한 사례였지만, 익명 대화가 불러온 문제와 네트워크의 고립도 함께 드러냈다.
댓글 (0)
로그인하면 이 기사에 내 생각을 남길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