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멜버른의 한 임대주택 식당 구석에 ‘기후 붕괴 때 사용’이라고 적힌 손바닥 크기의 컴퓨터가 놓여 있다. 메리벡 테크(Merri-bek Tech)는 이 라즈베리 파이를 지역 거점에 둘 재생에너지 기반 서버로 키워, 정전과 인터넷 장애 때도 주민들이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려 한다.
기후변화로 극한기상이 잦아지며 기반 시설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 이 계획은 대형 기술기업에 의존하지 않는 지역 디지털망을 만들려는 흐름의 한 사례다. 지역 단체나 디지털 기반 시설의 독립성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계획이 실제 운영 단계에 이르렀는지와 필요한 거점·기술이 무엇인지 살펴볼 만하다.
디지털 주권은 디지털 환경을 작동시키는 기반 시설과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스스로 통제한다는 생각이다. 자신이 쓰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가 저장되는 곳을 선택하는 일부터, 기업이나 정부가 해외 기술업체에 의존하는 문제까지 포함한다.
메리벡 테크의 계획은 어디까지 왔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자 지역 활동가인 제이드 앰브로즈(Jade Ambrose)는 지역 공동체가 정전이나 인터넷 장애를 겪을 때 통신할 수 있는 비상 거점을 구상한다. 메리벡 테크는 2023년 결성된 뒤 20명이 집에 장치를 두겠다고 신청했지만, 도서관이나 주민센터 같은 지역 거점은 아직 장치 설치에 동의하지 않았다.
무선으로 연결해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고도 기기끼리 소량의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앰브로즈가 말한 계획은 아직 운영되지 않는다. 한 장소에서만 실행하도록 설계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여러 장소에서 동기화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앰브로즈는 이 장치를 지역 사회의 중요한 기반 시설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는 자신을 인간과 기술,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미래를 그리는 ‘솔라펑크’ 운동의 일원으로 설명한다.
디지털 주권을 둘러싼 주장은 무엇인가
퀸즐랜드공과대학(QUT) 디지털미디어연구센터의 박사후 연구원 애슈윈 나가파(Ashwin Nagappa)는 인공지능 시대에 지정학적 이유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기술 자립을 원하는 움직임이 커졌다고 본다. 유럽연합은 역외 업체의 클라우드 기반 시설과 소프트웨어, 하드웨어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자체 기술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병원과 에너지망, 공공서비스에 필요한 기술을 다른 곳에 의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유럽연합의 계획은 아직 법제화되지 않았다. 실현이 쉽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나가파는 호주도 해외 기업의 디지털 기반 시설에 의존하고 있으며, 자체 대안 개발에서는 유럽연합보다 더디다고 평가했다. ABC는 2026년 6월 호주 정부 당국자들이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같은 해외 위성 인터넷 제공업체에 의존할 때의 위험을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당국자들은 민간 위성 인터넷이 호주의 법 집행과 자국 보호 능력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고 봤다.
개인 차원에서는 데이터를 자신의 시스템에서 관리하는 셀프호스팅이나 인터넷 공유재를 지지하는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나가파는 이런 분산형 시스템이 규모를 키우기 어렵고, 운영자가 문제를 일으킬 위험도 있다고 지적한다. 익숙하지 않은 서비스로 옮기도록 이용자를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다.
확인된 것과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
메리벡 테크의 장치 설치 의향자는 20명이지만, 지역 거점의 참여는 확보되지 않았다. 무선으로 기기끼리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술적 가능성과, 여러 장소에서 소프트웨어를 동기화해 실제 서비스를 운영하는 일은 구분해야 한다. 현재 계획은 아직 가동되지 않는다.
앰브로즈는 대형 기술기업을 떠나는 데 일상적인 불편이 따르며, 윤리적 이유가 있을 때 그 선택이 의미 있다고 말한다. 나가파는 분산형 시스템의 확장성과 운영 위험을 짚는다. 원문은 메리벡 테크 계획의 비용이나 지역 거점이 참여하지 않은 이유, 실제 운영에 필요한 일정은 밝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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