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캡처 · entropicthough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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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해커 문화는 어떤 PDP 컴퓨터를 썼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작은 컴퓨터에서 발전한 유닉스와 큰 컴퓨터에서 발전한 이맥스의 차이는 당시 각 조직이 감당할 수 있었던 컴퓨터 자원과도 맞물려 있었다.

PDP 컴퓨터에 매료된 이유는 초기 컴퓨팅과 해커 문화의 상당 부분이 이 기계들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기계별 가격은 최소 구성 기준이며 인플레이션을 반영했다. 시간은 속도를 가늠하는 지표로 메모리 사이클 시간을 사용했다.

PDP-1은 주로 실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산업 제어 시스템은 사람이 판단을 내리거나 복잡한 논리 회로 장치를 사용했다. DEC의 일부 엔지니어는 범용 컴퓨터를 쓰려는 고객층이 있는지 알아보려 했다. 당시 ‘컴퓨터’는 일괄 계산을 수행하는 대형 메인프레임을 뜻했기 때문에 PDP-1을 컴퓨터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PDP-4는 PDP-1을 변형한 기종으로, 속도는 조금 느렸지만 훨씬 저렴했다. PDP-1과 호환되지는 않았다. 새로운 칩 기술을 적용한 PDP-4는 PDP-7이 됐고, 비용과 속도를 더 개선해 PDP-9으로 발전했다.

PDP-5는 PDP-1과 PDP-4가 산업 제어 시스템에 쓰기에는 지나치게 강력하다는 판단에 따라 만들어졌다. 크기를 줄여 가격을 낮췄지만 PDP-1·PDP-4와의 호환성은 포기했다. 목표 시장은 대체로 같았다. 칩을 업그레이드한 기종이 PDP-8이다.

PDP-6은 다른 시장을 겨냥한 전혀 다른 기종이었다. 메모리를 넉넉하게 직접 주소 지정할 수 있었고 메모리 보호도 지원해 시분할 시스템으로 쓸 수 있었다. 메모리 용량 덕분에 Lisp를 잘 실행할 수 있었다. 작은 기종에서도 Lisp를 실행할 수는 있었지만 큰 Lisp 프로그램을 돌리기는 어려웠다. 칩을 업그레이드한 기종은 PDP-10이 됐다.

PDP-11은 서로 호환되지 않는 여러 제품군을 병행하지 않도록 앞선 모델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새로운 아키텍처였다. 성능과 가격대가 서로 다른 여러 변형 모델이 나왔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구성도 PDP-10 사용자 다수를 끌어들일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

VAX는 훨씬 나중에 나왔지만, 결국 PDP-10을 대체했기 때문에 비교에 포함됐다. VAX는 PDP-11과 어느 정도 호환됐지만 서로 다른 시장을 겨냥했다.

해커 문화에는 소형 컴퓨터(18비트 이하) 사용자와 대형 컴퓨터(32비트 이상) 사용자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유닉스와 이맥스의 대비가 한 사례다. 유닉스는 PDP-7에서 처음 만들어진 뒤 PDP-11로 이식됐고, 다른 PDP-11 사용자들에게 배포됐다. 시분할을 지원하면서도 작은 컴퓨터에서 돌아가야 했던 조건은 유닉스의 구현과 인터페이스에 큰 영향을 줬다. C 언어와 표준 라이브러리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이맥스는 대형 PDP-10에서 만들어져 다른 PDP-10 사용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이맥스는 넉넉한 하드웨어 자원을 활용했다. 여러 Lisp 변형도 그랬다.

작은 컴퓨터 해커가 될지 큰 컴퓨터 해커가 될지는 고용주가 어떤 기계를 살 여력이 있었는지에 달려 있었다. 유닉스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하려 했던 민간 기업 Bell Labs에서 만들어졌다. 이맥스는 당시 DARPA 자금이 넉넉했던 MIT에서 개발됐다. 리처드 가브리엘(Richard Gabriel)은 이 차이를 “MIT/스탠퍼드 스타일”과 “뉴저지식 접근법”이라고 불렀다.

PDP-11에서 개발된 다른 사례로는 Usenet, vi, Windows NT로 이어지는 계보를 가진 운영체제 RSX-11, make, 명령을 조합해 쓰는 셸의 발상, awk 같은 작은 프로그래밍 언어가 있다. PDP-10에서는 Scheme, TeX, Zork, 이메일, Microsoft BASIC 등이 만들어졌다.

이런 역사가 무엇을 말해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