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는 소프트웨어 기업이 무리하게 성장하지 않고도 운영될 수 있는 길을 열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이 쉬워지면서 제품은 대중을 겨냥해 크게 키우는 대신, 각자의 자연스러운 규모를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소프트웨어 제작을 더 많은 사람에게 열어주는 일은 중요하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HyperCard의 꿈은 AI가 제작 과정을 크게 가속하면서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소설가 로빈 슬론(Robin Sloan)은 앱을 집에서 만든 음식에 비유했고, 최근에는 AI가 이런 대중화를 어떻게 쉽게 하는지 후속 글에서 다뤘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필요한 것을 그냥 “요청하면” 된다.
이 변화는 소프트웨어 사업의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소프트웨어 제작의 대중화와 바이브 코딩은 맞춤형 프로그램을 필요할 때마다 만들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SaaS 종말론’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고 전문가가 많은 이용자를 위해 만든 소프트웨어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제품에는 여전히 기술과 안목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 중요한 질문은 소프트웨어가 전문적으로 만들어지는지 여부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소프트웨어가 도달할 수 있는 여러 규모와 시장을 생각해야 한다. 모든 소프트웨어가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아 무한히 성장할 필요는 없다. 제품은 각자 알맞은 규모를 찾을 수 있다.
모두가 쓸 제품을 만드는 일도 좋다. 반면 특정한 소수에게 필요한 제품이라면 빠르게 시제품을 만들고, 비교적 이른 시점에 현금 흐름을 흑자로 돌릴 수도 있다. 거대한 잠재시장(TAM)을 내세워야만 하는 시대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시제품 제작 비용이 낮아지면서 실패했을 때 잃는 비용도 줄었다.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한지 쉽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으므로, 아무도 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수년과 막대한 자원을 쓰는 일도 줄어들 수 있다.
이것이 벤처캐피털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업 형태와 자금 조달 방식이 훨씬 다양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 소기업(Silicon Valley Small Business)’은 “소기업의 가치와 규율을 빅테크의 노하우와 야망에 결합”하는 모델이다. Are.na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찰스 브로스코스키(Charles Broskoski)는 사업을 개인적인 일로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에게 Are.na를 계속 운영한 이유는 언젠가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비스 자체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브로스코스키는 글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를 시작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돈을 버는 것이 창업의 주된 이유이며 소프트웨어로 수익을 내려면 규모를 키우고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아야 한다는 하나의 통념을 들었다. 소프트웨어는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과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므로, 그 경험을 뒷받침하는 자금 조달 방식도 하나뿐이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다양한 사람과 성과를 반영하는 기업이 더 많아지면 인터넷도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봤다.
자금 조달 방식을 더 다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아닐 대시(Anil Dash)는 15년 전 벤처캐피털 없이 스타트업에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을 썼다. 소프트웨어 제작에 관해서는 그 방법들이 지금도 타당할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더 실행하기 쉬워졌다는 게 이 글의 관점이다.
‘공간적 사고’를 위한 캔버스 Kinopio는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다. 제작자 피리(Piri)는 ‘유기적 소프트웨어’에 관한 글에서 이 개념을 다음과 같은 기업이 만드는 소프트웨어로 정의했다.
- 주된 의무가 투자 유치나 인수 추진이 되도록 자금을 조달하지 않는다. 자체 자금 조달, 크라우드펀딩, 보조금, 엔젤 투자 등은 가능하다.
- 명확한 가격 안내 페이지를 둔다.
- 자금과 수익의 출처를 공개한다.
소프트웨어가 알맞은 규모를 찾으면 그에 맞는 조직도 더 자연스러운 형태를 띨 수 있다. 한두 명이 수십 년 동안 운영하면서 사명에 깊이 헌신하는 조직도 가능하다. 이는 더 지속 가능한 조직, 어쩌면 더 ‘공명하는 컴퓨팅(resonant computing)’으로 이어질 수 있다.
1997년부터 운영된 웹 기반 주기율표 Ptable이 한 사례다. 소개 페이지에 따르면 Ptable은 마이클 다야(Michael Dayah)가 만들었으며, 소유·디자인·프로그래밍·유지 관리를 모두 혼자 맡고 있다. 광고 회사와 다국적 교육기술 기업으로부터 수십 년간 매각 제안을 받았지만, Ptable은 무료와 독립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소개한다.
이런 사례가 더 필요하다. 이메일 뉴스레터 서비스 Buttondown이나, 30년 넘게 매킨토시용 문서 편집기 BBEdit을 만들어 온 Bare Bones Software도 그 예다. 폴 포드(Paul Ford)는 최근 글에서 미래가 거대한 플랫폼에서 거대한 앱 몇 개가 막대한 수익을 내는 모습이 아니라, 교회와 상호부조 모임, 회사 부서, 소프트볼 리그에 맞춰 만든 작은 앱이 대량으로 존재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고 썼다.
모두를 위한 제품을 만들거나 큰 투자를 받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필요는 없다. 소프트웨어가 알맞은 규모를 찾도록 두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댓글 (0)
로그인하면 이 기사에 내 생각을 남길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