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캡처 · mitch.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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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코딩 등을 맡기는 일은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AI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만들고 싶었던 멋진 것을 검색하다가 이미 누군가 만들어 놓은 걸 발견했을 때처럼 지루하고 풀이 죽으며 공허한 기분이 든다. 왜 모두가 그런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내가 세운 가설은 AI에 열광하지 않는 사람은 주로 자신이 하는 일에서 가치를 얻는 데 익숙하고, AI에 열광하는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서 혜택을 얻는 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AI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내면 멋진 작업을 직접 해볼 기회를 빼앗긴 것 같아 슬프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AI가 자신만의 새 웹 앱이나 블로그 글, 노래 같은 것을 만들어 준다고 기뻐한다.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느끼는 설렘과 강한 몰입감을 좇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의 경력도 상당 부분 그 덕분이다. 대학에 앱 개발 동아리가 있고 튜토리얼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첫 모임에 나가기도 전에 혼자 강의 자료를 쓰기 시작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그 일을 계속하며 약 3만 단어 분량의 자료를 쓰고 발표했다. 나머지 대학 생활 동안 만든 자료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거나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나는 뭔가 멋진 것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이어지기 위해 TV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반면 AI가 자신을 위해 만든 음악만 듣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그런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그런 교감을 찾지 않는 것 같다.

지난 직장에서 함께 일한 사람이 AI로 자기 일을 자동화하겠다는 이야기를 거듭하는 걸 보고 당황했다. 클로드가 일을 전부 해준다면 거기서 일할 이유가 무엇일까? 하지만 AI는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소기업 사장처럼 충분히 많은 일을 위임해 월급만 받으면 되는 듯한 기분을 조금 맛보게 해준다. 많은 사람이 바로 그런 삶을 꿈꾼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직장과 경력에 소유권이 있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클로드가 자기 일을 대신하게 되더라도 그 직장을 계속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해야 할 일이 없어지고도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인지, AI를 위협으로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회사 소유주가 아니라면 정말 늘 그렇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직장이 일시적이고 불확실하다는 내 생각은 소유물 역시 일시적이라는 생각과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언젠가 죽고, 가진 것을 가져갈 수는 없다. 세상에 울림을 주고 가치를 더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닿는 일이다. 쓰이지 않는 강의실을 빌려 피자를 먹으며 React가 무엇인지 배우는 모임을 여는 것만으로도 그렇다. 반면 AI가 만든 음악을 개인적으로 모으는 일에서 나는 같은 가치를 보지 못한다. 물론 그 모임에 온 사람들도 언젠가는 죽겠지만 말이다.

위 내용에 동의한다면, 아마 이 부분은 읽지 않는 편이 좋다.

다만 열심히 일하는 것의 가치를 과장하기도 쉽다. 사람들이 자기 직장을 실제로 소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순전히 노력과 열정만으로 직장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다. 요즘 많은 일자리는 사실상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상당수 업무는 위에 있는 사람을 만족시키고, 그들이 다시 그 위의 사람에게 성과를 보여주도록 반쯤 임의로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세부 사항과 맥락은 모두 사라지고, 개별적으로 한 일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영업자이거나 기업의 최상층에서 다른 사람의 업무를 정하는 사람이라면 고객의 필요와 요구에 맞춰 일을 조직하고, 고객의 구체적인 기대를 충족하거나 뛰어넘도록 최적화해야 한다. 이는 일을 최대한 많이 해내는 것과는 전혀 다르며,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에게 좌절감을 줄 수 있다. 모든 것이 부조리한 포스트모던의 꿈속 풍경 같고, 가치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달 위에 세운 유리로 부푼 요정의 성처럼 위태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