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터넷 트래픽 대부분은 여전히 해저 광케이블을 통해 이동한다.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엘리자베스 브로(Elisabeth Braw)는 새 책 『Undersea War』에서 국제 규범의 약화와 지정학적 갈등이 해저 케이블과 에너지 기반시설의 파괴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짚었다.
브로에 따르면 해저 케이블 손상의 약 60%는 어업이나 선박 운항 중 그물이나 닻을 끌면서 생기는 인재다. 폭풍과 해저 산사태도 일부 원인이다. 해마다 케이블 150~200개가 손상되지만 대개 신속히 복구된다. 다만 최근에는 선박이 장시간 닻을 끌어 케이블을 끊거나 훼손한 사건을 두고 고의성 의혹이 제기되면서 각국 정부의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2024년 12월에는 러시아와 연계된 유조선 Eagle S가 해저에서 약 56마일(90km) 동안 닻을 끌어 데이터 케이블 4개와 발트해·북유럽 전력망을 잇는 Estlink 2 해저 전력 케이블을 절단하거나 손상했다. 이 중 데이터 케이블 하나는 한 달 전인 2024년 11월 중국 화물선 Yi Peng 3호에 의해 끊긴 적이 있다. 유럽 당국은 Yi Peng 3호 선원을 기소하지 않았지만, 핀란드 정부는 Eagle S의 고위 간부 3명을 기소하려 했다.
대만에서는 중국 소유 선박 Hong Tai호 선장이 2025년 2월 해저 통신 케이블을 끊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같은 해 6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대만 입법부는 해저 케이블이나 파이프라인을 고의로 훼손할 경우 최대 징역 7년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브로는 의심스러운 사건이 반복됐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선박 선원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히지 않는 한 고의성을 확인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와 중국의 연구선이 케이블 주변에 오래 머무는 일과 잠수함·드론 등을 이용해 케이블을 손상하는 기술의 개발 가능성도 우려했다. 다만 이런 공격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해저 케이블이 영해 밖 국제수역을 지나 여러 나라를 연결해, 한 국가가 관할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도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냉전 시기에도 국제 조약을 지키자는 공감대가 있었고,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1982년 채택됐다. 하지만 브로는 오늘날 주요 국가들 사이에서 조약 준수 의지가 약해지고 있으며, 러시아 등이 군사력 이외의 수단으로 다른 나라를 약화하려는 상황에서 케이블이 매력적인 표적이 됐다고 주장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도 안보 위험이 케이블 사업에 영향을 미쳤다. 브로에 따르면 인도 서부 방향 인터넷 트래픽과 디지털 연결의 3분의 1이 페르시아만을 통과한다. 전쟁이 시작된 뒤 이 지역에서 예정됐거나 진행 중이던 케이블 사업 3건은 중단되거나 폐기됐고, 업체들은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케이블 설치선은 작업 중 한곳에 머물러야 해 무기와 발사체가 오가는 해역에서 특히 취약하다는 설명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한 데 이어 해저 케이블에도 요금을 물리겠다고 한 일은, 조약을 지키지 않는 국가가 있다는 이유로 다른 국가도 의무를 무시할 수 있다는 논리를 부추길 수 있다고 브로는 우려했다. 그 여파가 해협을 넘어 다른 나라의 해저 케이블 통행료 부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했다.
케이블 소유와 공공의 안전을 누가 책임질지도 쟁점이다. 오늘날 케이블은 대부분 민간 기업이나 컨소시엄이 소유하고, 일부 대형 기술 기업은 자체 트래픽을 위해 케이블을 건설한다. 기업은 추가 케이블 설치 비용과 손상 위험을 비교해 투자 여부를 결정하지만, 정부는 통신망에 여분의 경로를 더 두길 원할 수 있다. 브로는 정부 보조금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모든 해저 케이블을 위한 예비망을 마련할 만큼 재원이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 『Undersea War』와 엘리자베스 브로 소개: Atlantic Council, 책 소개
- 주요 사건 자료: Eagle S, Estlink 2 사건, 발트해 케이블 손상, 핀란드의 Eagle S 간부 기소 시도, 대만의 선장 유죄 판결, 대만의 처벌 강화
- 관련 보도와 자료: 노르웨이 인근 러시아 작전 관련 보도, 케이블 손상 장치 관련 보도, 메타의 대서양 케이블 발표, 유엔해양법협약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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