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딥마인드의 연구진은 일자리가 소득뿐 아니라 의미와 소속감, 사회적 인정, 선택권도 제공한다며, AI로 노동시장이 바뀔 때 현금 지원만으로는 이런 가치를 보전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네 나라 설문과 기존 연구 검토를 바탕으로 일의 비금전적 가치와 정책적 고려사항을 제시했다.

사람들이 일에서 얻는 것

영국·미국·덴마크·인도에서 실시한 대표성 있는 설문을 바탕으로 한 논문 “What is Work For? Labor, Politics, and Meaning in the Age of AI”은 사람들이 직업과 경력을 가족보다 낮지만 국가와 취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고 보고했다. 인도 표본은 온라인 응답자만 포함해 사무직 비중이 높다는 한계가 있다.

소득은 일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지만, 응답자 대다수는 성취감과 소속감도 일에서 얻는다고 답했다. 모든 나라에서 과반은 사회적 지위, 사람을 만날 기회, 사회에 기여할 기회도 중요하다고 봤다. 이런 비금전적 가치는 소득과 직업군에 걸쳐 나타났다.

설문은 현재 급여의 60~120%를 보장받는다면 일을 그만둘 의향이 있는지도 물었다. 제시 금액은 급여의 10%포인트씩 순차적으로 높아졌다. 미국·영국·덴마크 응답자의 약 20%는 현재 급여의 100~120%를 보장받더라도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인도는 다른 나라와 다른 결과를 보였으며, 온라인 표본 구성의 영향이 일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연구진은 응답자를 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네 유형으로 나눴다. 응답자의 3분의 1은 목적의식과 학습, 사회 기여에서 일 자체의 의미를 찾는 내재적 동기형이었다. 거래형은 26%로 급여와 복지를 중시했고, 공동체 지향형은 23%로 직장 내 소속감과 동료와의 교류를 중시했다. 지위 지향형은 17%로 자부심과 사회적 지위, 인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보장 소득을 받고 일을 그만둔다면 어떻게 시간을 쓸지도 유형에 따라 달랐다. 거래형 응답자 대다수는 여가와 취미, 여행을 하며 사실상 은퇴하겠다고 답했다. 내재적 동기형과 공동체 지향형은 약 절반이 무급 봉사나 가족 돌봄을 택하겠다고 했고, 지위 지향형의 절반은 다른 일자리를 찾거나 사업을 시작할 때까지 보장 소득을 안전망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내재적 동기형은 거래형보다 일을 그만두기 위해 더 높은 소득을 요구했고, 급여의 120%를 제시받아도 그만둘 가능성이 더 낮았다.

실직과 은퇴가 웰빙에 미치는 영향

“Work, Wellbeing, and Choice: Empirical Lessons for AI Futures”은 실업자, 은퇴자, 복권 당첨자, 배우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사람 등을 다룬 심리학·사회학·경제학 연구 100편 이상을 검토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복권 당첨자 대다수는 소득을 일부 또는 전부 대체할 만큼 큰돈을 받아도 일을 계속한다. 수백만 달러를 받은 당첨자도 직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고, 재산을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유연성을 높이는 데 쓰기도 한다.

직장을 잃은 사람의 웰빙을 가장 크게 예측하는 요인은 경제적 어려움이지만, 지위와 일과표, 공동의 목적 같은 비금전적 요소도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다만 일을 그만두는 일이 언제나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일할 수 있고 일자리를 원하지만 구하지 못한 실업은 정신 건강과 삶의 만족도, 웰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재취업한 뒤에도 심리적 상흔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인과적 근거가 보고됐다. 반면 은퇴자는 대체로 높은 삶의 만족도와 웰빙을 보인다.

차이에는 선택권과 사회적 규범이 관련된다. 비자발적으로 은퇴한 사람은 웰빙이 훨씬 낮다. 일하는 어머니와 전업주부를 비교한 연구에서도 웰빙에는 일하는지 여부보다 자신의 선호와 노동 상태가 일치하는지가 중요했다. 장기 실업자가 공식 은퇴 연령에 도달한 뒤 소득과 일상이 그대로인데도 삶의 만족도가 오르고 우울증 비율이 낮아지는 현상은, 실업에 따르는 낙인과 사회적 기대가 약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을 중시하는 문화가 강하거나 개인주의적인 사회에서는 비자발적 실업의 부정적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큰 영향을 받는 경향도 보고됐으며, 이는 남성에게 생계부양자 역할을 기대하는 사회적 압력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주변 사람들도 실업 상태인 경우에는 부정적 영향이 작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미와 돌봄, 지역사회 활동, 자원봉사는 전통적인 일자리의 비금전적 혜택 일부를 제공할 수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도 사례다. 연구진은 걸프 국가들이 석유 수익을 바탕으로 공공부문 고용을 확대했고, 아랍에미리트에서는 노동연령 시민의 최대 90%가 공공부문에 고용됐다고 설명한다. 이들 가운데는 고용 안정과 더 나은 근무 여건 덕분에 이런 체제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았을 가능성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인의 78%는 공공부문에서 일하기를 선호한다고 답했으며, 공공부문 일자리를 기다리며 실업 상태를 택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AI로 인한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할 때 선택권을 우선하고,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규범과 그 변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자원봉사나 공공 일자리처럼 일의 비금전적 혜택을 대신할 수단도 검토해야 한다.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소득 지원은 필요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일자리가 제공하는 여러 가치

연구진은 일자리를 경제적·심리적·사회적 기능을 한데 묶은 ‘제도적 묶음’으로 바라본다. AI로 일자리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직장에서 얻던 공동체와 목적의식, 사회적 지위를 대신할 수단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연구진이 준비 중인 논문은 생산적인 역할에서 밀려날 때 정체성과 인정의 기반이 약해져 존엄성이 훼손될 가능성도 다룬다.

조직심리학 등의 심층 인터뷰와 질적 연구는 사람들이 역량과 선택권, 인정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일은 사람을 무력하거나 저평가받는다고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시민 참여와 공식 자원봉사 같은 활동은 의미 있는 일이 제공하는 구조와 공동체, 사회적 인정을 일부 대신할 수 있다. 연구자와 정책 담당자는 유급 일자리를 보호하거나 재교육을 제공하고, 시민사회 제도를 강화하거나 새로 설계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연구진은 말한다.

일의 의미는 노력과도 연결될 수 있다. 심리학에서 ‘노력 역설’은 사람들이 활동에 노력을 들였다는 사실을 그 활동의 의미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한 실험에서는 AI 도구를 쓰며 정신적 노력을 덜 들였다고 느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덜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일자리가 유지되고 AI 도구 활용 방식만 바뀌더라도, 일에서 얻는 의미와 기르는 기술이 달라질 수 있다.

사회적 인정은 눈에 보이는 결과에서 사람의 역량을 추론하는 데 기대기도 한다. AI가 짧은 시간 안에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고 이를 제시하는 사람이 그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과물이 개인의 역량을 보여주는 신호로 기능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역량을 입증해 얻는 존중도 주고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

수학계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됐다. 수학자들이 최근 발표한 서한 “A Severe Misalignment of AI in Mathematics”은 증명의 정답을 제시하면서도 공동으로 이해를 쌓는 인간의 과정을 건너뛰는 AI 생성 원고 수백 편에 문제를 제기했다. 서한은 문제를 푸는 일이 개념적 직관과 새로운 질문을 제기할 능력을 기르는 수단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연구진은 AGI 전환을 관리하려면 일에서 얻는 존엄성이 약해질 위험을 고려하고, 일이 제공해온 가치를 유지하거나 확대할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구진은 고도화된 AI가 널리 확산되면 모든 노동자가 기존 방식대로 계속 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순진한 기대라고 덧붙인다. 과거의 기술 변화와 마찬가지로 일부 일자리는 사라지고, 일부는 바뀌며, 새로운 종류의 일이 생길 수 있다. 임금 대체는 소득 손실을 보완할 수 있지만, 의미와 목적, 인정, 선택권의 손실까지 다루려면 별도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이다. 이 글은 웰빙과 일에 관한 연재의 첫 편이다.

관련 자료로는 Google DeepMind 연구진의 AGI 경제정책 글과 미국 성인 5만6천 명의 소득 보장 선호를 다룬 글이 소개됐다.